2006, OhmyNews

 

  • 14th March 2006 OhmyNews 

 

“로댕이 살아있다면 슈퍼카 만들었을 것”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는 권오상 전을 다녀와서

▲ 3층 전시장 내부 정경
ⓒ 아라리오 갤러리

최근 한국미술계 최대의 화제는 ‘젊음’이다.

원로와 중진들의 그늘에 가려져 기껏 전시회의 말석에나 끼어 황송해 하던 젊은 작가들이 돌연 한국미술계의 주역으로 대접받고 있다. 실험적인 비엔날레에서나 힘을 쓰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최근에는 상업화랑과 경매시장에까지 온통 젊은 작가들이 휩쓸고 있다.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온 세계화의 거센 파도 탓인가?

한국미술계의 또 다른 화제는 천안에 근거를 둔 아라리오 갤러리의 혜성과 같은 등장과 빠른 행보다. 사주인 ‘씨킴’의 독특한 경영전략에 따라 북경에 아라리오 베이징을 오픈하는 등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는 가운데 여덟 명의 젊은 작가들을 전속으로 삼아 순차적으로 미술계에 띄울 예정이다.

▲ ‘데오도란트 타입’, 모델을 사방에서 다각도로 촬영하여 입체적으로 모자이크한 작품
ⓒ 아라리오 갤러리

아라리오는 전속작가들 중에서 첫 번째 주자로 조각가 권오상을 내보냈다. 권오상은 사진조각이라는 새로운 필드를 개척한 젊은 조각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각과 사진을 접목한 ‘데오도란트 타입’은 권오상을 세상에 알린 권오상표 연작이다.

이 연작은 무겁고 둔중한 전통조각과는 다른 가볍고 산뜻한 현대적 감성으로 시대적 공감을 얻었다. 일찍이 데이비드 호크니가 외눈박이 카메라의 편협성을 간파하여 파노라마 사진으로 화면을 만들었던 것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나 평면적이었던 호크니와는 달리 입체적으로 구성하여 영역을 확장하였다.

데오도란트 타입 연작은 구상조각의 형상에 사진이라는 영상매체를 접목시킨 것으로 둘 사이의 직접적인 결합의 형태다. 극사실조각가 듀안 핸슨이나 존 드 안드레아가 사실성을 적극적으로 구현하기 위하여 조각 자체로 극단적 표현 방법을 추구한 데 비해 권오상은 사실성의 상징적 매체인 사진을 조각에 접목하는 방법을 취했다.

그러나 사실 권오상의 조각과 사진의 접목은 처음부터 무리한 시도였다. 조각은 입체로 3차원적인 공간성을 갖고 있으나 사진은 평면일 뿐이다. 애초에 결합할 수 없는 대상이다. 따라서 사실성의 측면에서 보면 성공할 수 없는 결합이다. 그러나 예술은 불협화의 충돌에서부터 에너지가 발생하는 속성이 있다. 때문에 극사실 조각들보다 오히려 더 큰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 데오도란트 타입 연작
ⓒ 아라리오 갤러리

장르와 장르 간 접합은 흔히 메타적이다. 작가로서의 권오상은 조각이라는 형식과 사진이라는 매체를 결합하는 메타적 방법으로 작업에 임해오고 있다. 권오상은 자신의 내부에서 확장과 수축의 반작용적 갈등을 통해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작가라 할 수 있다.

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한 태생적 바탕에 시대적 반향인 매체에 대한 관심 사이에서 긴장과 갈등을 발생시키고 이를 작품으로 풀어내는 실천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그의 장점이라고 본다.

‘더 플랫’ 시리즈는 자신의 조각적 태생으로부터 아주 멀리 나아간 경우다. 평면인 사진만을 가지고 단순한 조작을 통해 이론적으로 입체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잡지의 광고사진에서 보석사진을 오려 가는 철사로 평면에 세워 늘어놓고 그를 다시 촬영하는 작업은 본인의 주장이 아니라면 누구나 사진작품으로 본다. 개념적으로는 조각적 요소가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사진이다. 이 작업으로 그는 사진가로도 매우 고무적인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결국 그는 발길을 돌려 조각으로 귀환하였다.

▲ , 잡지에서 보석 사진을 오려 평면에 세워 놓은 후 대형 카메라로 촬영한 작품
ⓒ 아라리오 갤러리

권오상이 조각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내놓은 신작 ‘더 스컬프쳐’는 사진 쪽으로 나아가던 그가 급격히 조각으로 회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초기 작품에 속하는 데오도란트 타입보다도 더 뒤로 후퇴를 한 셈이다.

권오상의 작업 형태는 진자의 왕복운동과 같다. 앞으로 진행하여 ‘더 플랫’까지 갔다가 뒤로 후퇴하여 ‘더 스컬프쳐’까지 옴으로 해서 진폭이 더욱 커졌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세계가 확장된 것이다. 그는 앞만 보고 나아가는 전진형 예술가가 아니라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조심스럽게 확장을 꾀하면서 이미 확보한 영역에서의 내실을 기하는 주도면밀한 관리형 예술가로 보인다.

조각으로 회귀를 꾀하는 권오상이 신작을 내 놓으며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 “로댕이나 미켈란젤로 같은 조각가가 살아있었다면 무엇을 만들었을까”라는 것이었다면 스스로 내린 결론이 바로 슈퍼카를 만드는 것이었다.

▲ 권오상의 신작 ‘더 스컬프처(The sculpture)’, 브론즈로 슈퍼카를 만들었다.
ⓒ 아라리오갤러리

권오상은 무엇을 근거로 슈퍼카를 선택했을까?

그는 도록에 쓰인 대담에서 슈퍼카에 이르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의 결론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의 조각에 대한 생각과 작업의 태도를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자료에 의해 추정한다면 그는 시대에 적합한 이 시대의 예술가가 되기를 원한다. 미켈란젤로나 로댕이 그들 시대의 시대정신에 의해 탄생한 존재였던 것과 같이 그도 다름이 아닌 이 시대의 예술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권오상은 지나치게 전위적이지도, 그렇다고 고루하지도 않은 작품으로 시대의 흐름에 적절히 동참하고 있다. 전통 조각이 퇴물로 취급되고 설치와 영상이 각광을 받는 시대에 이 둘을 조합한 작품으로 접점을 찾아 자신을 드러내었다. 그는 결코 자신의 태생인 조각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사진가로 취급될 정도로 사진에 접근하였다. ‘사진조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펼친 그의 줄타기는 3차원적인 조각과 평면에 불과한 사진 사이의 멀고 먼 거리에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오늘날 슈퍼카를 제조하는 회사들은 현대미술을 하는 집단처럼 보인다고 했다. 쓸데없는 것을 죽으라고 만드는 행위가 바로 현대미술과 닮았다는 말이다. 현대미술과 작가라는 직업군의 속성에 대해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현대미술이 예술을 위한 예술로 치달아 메타적 속성을 보이는데 대한 적절한 지적과 함께 자신의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 2층 전시장 입구
ⓒ 아라리오 갤러리

그는 ‘조각의 회복’을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권오상의 성공은 그가 시대를 멀리 앞서가는 외로운 선구자가 아니라 시대와 함께하며 한 발 먼저 실천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사진의 시대에 사진 쪽으로 적극 나아갔고 그가 예상한 흐름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 조각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는 영특하다. 이론적으로 잘 정리된 작업 내부의 당위성은 작가의 장점이다. 그의 작업에 대한 당위성은 시대의 흐름과 같이 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또한 다시 뒤돌아와 영역을 다진다. 한 시리즈에서 다음 시리즈로 진행하면 과거의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병행하면서 심화시킨다. 데오도란트 타입에서 더 플랫으로 다시 더 스컬프쳐로 넘나들면서 계속 발전시킨다.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는 이 시리즈들은 잘 구성된 당위성에 의해 유기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가 도록에서 보여주는 작업을 위한 디아그램을 보면 디오도란트 타입과 더 플랫 그리고 더 스컬프쳐, 이 세 가지의 기본 축으로부터 거미줄처럼 얽혀 나오는 다양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상호 교환하면서 화학작용을 일으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의미는 증폭되고 표현의 능력은 배가되는 것이다.

▲ 개막인사를 하는 씨킴
ⓒ 아라리오 갤러리

파격적인 행보를 계속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아라리오는 이번에도 기발한 방법으로 중요한 관람객을 오픈 당일에 몰아왔다. 갤러리가 있는 곳이 천안이라는 점에서 서울관객을 유치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아무리 중요한 전시라 해도 큰 맘먹지 않으면 개막일에 맞추어 참석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감안하여 아라리오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관람 희망자를 모집하여 예약을 받은 후 버스 세 대를 지원하여 관람객을 수송하였다.

전시장에서 보았던, 싱싱해 보이던 젊은 미술가들의 천안 나들이가 즐거웠는지 또는 로댕이 살아있다면 슈퍼카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권오상의 주장에 그들도 동의하는지 귀로의 버스에서 나누었을 그들의 후일담이 궁금하다.

임재광(jayrim) 미술평론가, 미술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