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Hankooki.com

 

  • November  24th Wed 2010  hankooki.com

조각가 권오상, 모터사이클, 현대조각을 묻다

<토르소> 전서 ‘더 스컬프쳐’ 시리즈 완성작들 선보여

모터사이클 다섯 대가 갤러리를 점령했다. 바이크 족의 로망이자, 동시대 모터사이클 디자인의 마스터피스라 불리는 두카티의 모델 네 대와 MV아구스타 모델 한 대다.이 중엔 모터사이클의 F-1 대회 격인 ‘모터 GP’ 우승 모델과 천재 디자이너 마시모 탐부리니가 2006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을 기념해 한정판으로 제작한 모델도 자리한다. 물감이 흘러내릴 듯 풍성하고 선명한 색감과 번쩍이는 광택은 갤러리가 아닌 바이크 매장인 듯하지만 바이크의 팔과 다리 격인 핸들과 바퀴는 제거됐다.

권오상(36) 작가의 <토르소>전(~12월 19일)이 열리는 갤러리2의 모습이다. 최근 몇 년간 해외에서 전시가 계속됐지만, 한국에서는 2006년 아라리오 천안 개인전 이후 4년 만이자, 서울에서는 2001년 인사미술공간 전시 이후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다.

‘데오도란트 타입’과 ‘더 플랫’ 시리즈로 사진과 조각의 경계를 허물며 조각의 범주를 확대시켜온 그다. 전통적인 조각에 더욱 가깝고 충실한 ‘더 스컬프쳐’ 시리즈의 하나인 이번 전시는 ‘현대적인 조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문자답이다.

4년 전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슈퍼카와 두카티 바이크 한대를 처음 선보였고, 이번 전시는 이 시리즈의 완성작들.

‘더 스컬프쳐’ 시리즈에서 ‘덩어리’로 본격적인 조각을 하고 있지만 어쩐지 기존의 조각과도 거리가 있다. 뉴욕에서의 두산 갤러리 레지던시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권오상 작가를 만나봤다.

‘더 스컬프쳐’ 시리즈로 처음 슈퍼카를 제작했고 이번엔 모터사이클이다. 왜 하필 이들이었나.

‘데오도란트 타입’도 사진 조각이었고 ‘더 플랫’도 잡지에 나온 광고사진을 오리고 세워서 촬영한 거였다. 조각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서 제대로 된 조각을 해보고 싶었다.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하나는 현대적인 덩어리였으면 좋겠다. 둘째는 현대 미술의 그럴싸한 요소들, 가령 작가의 혼이 담겨있는 듯한 터치나 붓자국이 느껴질 것. 그리고 만드는 과정이 처음부터 보일 것, 색깔이 있고 광택이 날 것 등이었다.

‘이런 요소를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놨을 때 과연 좋은 조각품이 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시작이었다. 전시장의 크기와 작품과의 비율을 고려해 가장 아름답게 표현될 사물을 고르다 보니 처음 자동차가 됐다.

이후 문이 작은 작업실을 옮기면서 작품 이동을 생각해 차보다는 크기가 작은 바이크가 된 것이다. 역사적인 인물이 후대에 동상으로 남겨지듯, 역사적으로 남을 만한 현대 상품 역시 제작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 작품은 언제부터 작업해왔나.

2006년에 시작한 작품이 하나 있고, 다른 건 2008년부터 시작된 작업이다. 처음 시간을 계산하면서 작업했는데, 색깔도 못 칠한 상태에서 1000시간을 훌쩍 넘겼다. 이후부턴 계산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실물이 아닌 인터넷과 서적을 통해서만 작업했다고 알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한정판이거나 오래 전에 제작된 바이크라 실물을 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2006년 슈퍼카 중에 람보르기니와 두카티 바이크를 브론즈로 완성한 후에 두카티 매장에 가보니 내 작품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바이크들이 아름다웠다.

바이크를 전혀 모른 상태에서 납작하고 평면적인 나사를 만들었는데, 거긴 부품 하나하나가 멋졌다. 이번에 만든 작품은 그때처럼 터무니없진 않다. 하지만 그 터무니 없음이 내 작품의 컨셉과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이크를 타본 적이 있나.

작업을 하면서 더 알고 싶어 직접 타봤다. 내 생일날, 자신에게 10년 된 중고 바이크를 240만 원을 주고 선물했다. 작지만 연료통이 길고 경주용같이 생겼다. 한두 달 타보면서 ‘240만 원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신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 작품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엉뚱하고 재미있지 않나. 솜씨 좋게 그린 사람 얼굴은 고등학교 입시학원에서 배운다.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뭔가 잘 만들어야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대 미술 역사와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현대 미술가는 직업적으로 다른 사람을 대신해 엉뚱한 생각과 상상을 하거나 빈둥거리는 사람이다. 무엇을 만들어도 상관없지만 작가들이 가진 여유를 관객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또한 제가 생각하는 소통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든 상관없다’라는 말과는 차이가 있다. 엉뚱하게 ‘1000시간을 넘게 들여서 만들면 좋은 예술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실험을 대신 해주는 사람인 것이다.

전통적인 조각의 재료가 무거워 사진 조각을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작가 편의적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난 부지런한 사람 아니다. 최소한으로 움직여 최대한 효과 거둘 수 있는 게 무엇일까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사진 조각을 하던 당시, 난 조각을 할 수 있었으나 무거운 재료를 옮기긴 싫었고, 대신 옆에 카메라가 있었다. 친구와 둘이 옮길 수 있는 작품만 하자는 것이 나의 모토였다. 당시 내겐 어시스턴트도 없었기 때문이다.

돌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함께 돌을 뒤집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일도 허다하다. 나 역시 작업공간과 함께 재료를 옮겨줄 사람이 있었기에 브론즈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 작품 중엔 구체관절인형의 재료(스톤클레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일종의 플라스틱인데, 느낌은 지점토 같고 돌가루가 섞여 있다. 이 재료가 너무 빨리 굳어서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품에 적당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유토의 끈적임을 난 좋아하지 않는다.

코팅 재료로는 에폭시나 크리스탈 클리어를 사용했다. 한국에서 이것은 광택제라기보다 본드로서 더 많이 쓰인다. 엉뚱하지만 이는 제 편의와도 닿아 있다. 내겐 시일 내 완성하는 것과 지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재료가 너무 멀리에 있고, 다듬는 과정이 복잡하다면 그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작품 구상이 아닌 재료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건 낭비란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바이크는 그다지 좋은 이미지를 가지지 못한다. 바이크 작품이 팔린 적이 있나.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팔린 적이 있다. 독일의 아트페어에서 특별 전이 열렸을 때 구입해갔다. 예상하기론 오토바이와 작품을 같이 수집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는데, 맞았다. 그리고 한번은 일본 미술관 관장들이 작업실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사진 조각도 좋아했지만 바이크 조각에 지대한 관심 가졌다.

어릴 때부터 봐온 만화영화 속 영웅들이 바이크를 타고 다니기 때문인지 그들에게 정의의 화신과 바이크는 동의어다.

이번 전시로 ‘더 스컬프쳐’ 시리즈는 완성이 된 것인가. 이전에 컬렉팅되지 않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다음 작업이 궁금하다.

어떻게 보면 이미 팔리지 않는 작품을 만들었다. 슈퍼카가 그것이다. 현재 한 대는 완성돼서 전시했고, 두 대는 브론즈 캐스팅만 못한 채로 아라리오 갤러리 수장고에 있다.

흔히 쓰는 잡동이 아니라, 금괴처럼 ‘순도 99.9%’ 도장이 찍힌 동괴를 사용했다. 브론즈 회사 사장님이 ‘권 작가 이건 천년 가는 거야’라고 하시더라. 그때 ‘내가 사고 쳤구나’ 생각했다. 덕분에 엄청난 제작비가 들었고, 가로 4미터, 너비 2미터에 이르는 슈퍼카는 팔리지 않고 있다. 적금이 없으니 이것을 적금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현대적인 생각을 담고, 현대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현재 작업실이 넓지 않은 점이 가장 힘들다. 세 가지 시리즈를 다 하기엔 턱없이 좁은데, 아예 작품을 하나로 통합해서 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

얼굴을 사진 조각으로 한다면 몸은 전통적인 조각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외에 내년 5월에 이전과 다소 다른 ‘더 플랫’ 시리즈를 두산 갤러리에서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사진=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