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Ajookyunggae

May 8th Thu 2012 Ajookyunggae

‘사진조각’창조한 권오상 “나는 조각가다”

사진조각가 권오상이 만든 현대미술거장 데이비트 호크니 흉상. 무제 로 타이틀을 달았지만 호크니로 제목을 바꾼다고 했다. 인터넷검색하다가 호크니가 보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2년전 미국 뉴욕 첼시에 있는 아라리오뉴욕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을때다. 그 앞에있는 세계적인 화랑 페이스갤러리에서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75)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어느날 갤러리관계자가 그의 전시를 보러왔을때 “네 작업이 호크니의 작업과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며 “호크니와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동안 자신의 작업을 두고 (입체주의적인 포토몽타주작업을 시도했던)호크니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있던 그는 내심 기대했다.

실제로는 호크니를 좋아하긴하지만 영향을 받았다는건 부정했던 그였다. 하지만 호크니가 누구던가. 로스앤젤레스의 수영장과 아파트 그림으로(더욱이 소설가 알랭드 보통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기도하다) 동시대 현대미술거장으로 우뚝선 그와의 만남을 거부하기는 쉽지않았다. 기다렸다. 하지만 웬걸, 그는 연락이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호크니’를 내 앞에 데려와야겠다. 정보는 넘치고 넘쳤다. 인터넷세상에서 그를 만나기는 식은죽 먹기. 컴퓨터에서 그를 속속 빼냈다. 직접 만나지도, 직접 사진을 찍지도 않았지만 데이비드 호크니의 흉상을 만들어냈다. 그것도 일흔이 넘은 현재 모습부터 20대시절 모습이 오버랩된 호크니가 전시장에 등장했다. 툭툭툭 영상이 불거지듯 볼수록 사실적이다.

관찰자, “‘노려봄'(eyeballing)의 재능은 미술가로서 최고의 장점”이라는 호크니의 말처럼바지주머니에 손을 끼고 노려보고 있는 호크니를 만들어낸 그는 ‘사진 조각가’ 권오상(39)이다.

아라리오청담갤러리 전시장에서 권오상 작가가 작품설명을 하고 있다.

9일부터 서울 청담동 아라리오갤러리청담에서 12회 개인전을 여는 작가를 전시장에 만났다.

미소년같은 작은체구의 작가는 ‘동안가수 이승환’의 모습이 설핏 스쳤다. 하지만 말할적마다 안경너머로 ‘호크니의 노려보는 눈빛’이 새어나왔다.

‘사진조각’ 장르를 개척한 그는 한국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스타작가다. 세계어디에도, 누구도 하지않은 작품으로 미술계에 파닥 튀어올랐고 그동안 뉴욕,독일 피렌체 일본등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며 ‘러브콜’을 받고 있다. ‘미술 한류’를 위해 한국의 현대미술가 100명을 소개한 영문책자 ‘100.art.kr’에도 선정됐다.

◆무거운조각 옮기기 싫어 나온게 가벼운 조각 ‘사진조각’ 시초

그가 창조해낸 ‘사진조각’은 2차원 평면 사진에서 3차원 조각으로 또는, 3차원 입체가 2차원 평면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박제한듯 ‘얼려버린듯한 초상화’와 광고이미지들을 채집해 알집처럼 담아낸 그의 작업은 ‘현시대의 정물화’로 읽힌다. ‘반복 재생산’ 시공간을 넘어서 어떠한 대상도 재현할 수 있는 현대조각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을 조각조각 이어붙여 만든 ‘사진조각’을 탄생시킨 이유가 있었다.

그는 “어릴때 월간미술을 보고 자랐는데 그속에 나오는 조각이 멋지다”고 생각 했다. 그래서 조소과로 들어왔지만 무겁고 웅장한 전통조각에 거부감이 들었다. “조각을 전공하면 무거운 재료를 다루는작업을 많이 하죠. 용접 석조를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야 조각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게 나온 무거운 작품을 옮기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친구와 둘이서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못할 작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엉뚱한 생각은 ‘가벼운 조각’의 힘이됐다.

사진을 이어붙이고 오려붙여 작업하는 그를 주변에선 ‘영리한 작가’로 부른다. 남이 해놓은 것을 차용해 쉽게 작업하는 것 아니냐는 ‘노략질의 예술’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권오상 표’를 만든 ‘데오드란트’시리즈가 힌트다. 뭔가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은 ‘니베아 데오드란트’광고를 보며 착안했다. 겨드랑이 땀내를 제거하기 위한 화장품이다. 원래 냄새를 없애고 다른 향기를 내게하는 일종의 눈속임을 갖는 점에 착안해 그의 사진조각에 ‘데오드란트’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사진을 조각조각 이어붙여 만든 3m가 넘는 거대한 작품에는 작가 자신이 등장했다. 맨 아래 밟혀있는 얼굴이 작가다. 고통이어도 모든 것을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 ‘권오상표’ ‘데오드란트’작업 이젠 인터넷 검색프린트로 가능

아라리오갤러리에서 2006년 천안개인전 이후 6년만에 갖는 이번 전시에는 ‘데오드란트 타입’ 19점,’더 플랫’시리즈 15점을 선보인다.

흉상 플랫연작과 함께 데어드란트 타입의 이번 신작 3점은 거대하다. 3m가 넘는 작품들은 인체를 형상화하여 만든 사진조각과는 다르게 다양한 포즈의 인체와 동물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결합됐다.

“이번 작품들은 이전에 직접 촬영하고 프린트해서 작업했던것과 달리 인터넷검색을 통해 나온 프린트로 작업했죠.오히려 퀄리티도 뛰어나더군요.”

작가는 이전 사진조각 모델에서 보여준 고해상도 사진의 화려한 디테일을 포기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다양한 해상도의 이미지들로 대체했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을 보면 이미지를 확대했을때 픽셀이 깨져서 보이는 현상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젊은시절부터 현재 늙은 모습이 엿보이는 호크니의 흉상도 인터넷으로만으로 가능했다. 특히 앞모습과 달리 흔히 볼수 없는 그의 뒷모습까지 재현할수 있던 것은 인터넷에서 찾아낸 영화의 한장면 덕분이었다.

대한 작업들은 그리스 전통조각에서 볼수 있는 인물의 포즈와 구도가 연상되기도 한다. 작가는 “패션광고를 보다보면 다양한 모델들의 포즈가 나오는데 알고보니 대부분 고전조각의 포즈에서 따온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작품속 인물들은 모두 주변인들이거나 또는 광고에서 보았던 멋지고 근사한 물건들을 캡쳐해낸 것이다. 잡지안에 있는 모든 이미지를 오려서 만들어낸 ‘플랫’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가벼운 조각에 이은 간단한 조각’이다. 온갖 잡다한 물건들로 뒤섞인 ‘플랫’시리즈는 그 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과다한 것의 허무함. 나는 이 사회를 허무하고 공허하다고 생각한다”는 작가는 ‘예술은 사기다’는 백남준의 말처럼 ‘눈속임의 대가’다.

잡지광고 이미지들을 오려붙여 간단한 조각을 만든 플랫시리즈는 현시대의 욕망을 그대로 담아 보여주는 정물화가 됐다./사진=박현주기자

◆내 작업은 “무한재생산 현시대 정물화”..조수 10-17명과 작업

“조각가가 로망”이라는 그는 사진과 조각의 이종배합으로 ‘진짜 조각가’ 됐다. 한때 사진조각이라는 희귀한 장르로 사진전과 사진작가로도 데뷔했지만 조각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데오드란트’이후 ‘더 스컬프처’를 타이틀로 청동을 이용한 자동차를 만들어 전통조각에 도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스티로폼과 같은 가벼운 재료를 사용하는 ‘가벼운 조각’이 그와 궁합이 맞다. 이번 전시에 나온 데오드란트 작업들은 더 디테일해졌다. 레진으로 마무리한 표면은 블링블링하다.

처음엔 데오드란트 작업은 판매가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분명히 안팔릴거라고 생각해 에디션을 잘 내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는 그는 “사실 작품이 팔리고 안팔리고에 대해 별 문제가 없다”며 “팔릴만한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작가야 말로 문제가 아닌가”라고 자문한다.

그의 작품은 삼성미술관 리움, 싱가포르 미술관등 세계각국 미술관등지에 소장되고 있다. 매년 꾸준히 가격이 오르며 팔리고 있다.

아직도 ‘사진이냐, 조각이냐, 그래픽이냐 콜라주냐’ 의문표를 던지며 한해 끊임없이 각종 그룹전과 전시를 열고 있는 그는 10명-17명의 조수들과 함께 일한다. 협업이 아닌, 월급을 주는 비즈니스 마케팅을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결혼도 했고, 평생 조각가로 살기로 작정했다.” 예전세대와 달리 작가생활하다 교수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겠다”고 했다.

“제 작업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여러 코드가 들어있으면 하는 것이죠. 내 생각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바쁘게 일할때 가끔 다른 생각을 하는게 작가들이죠. 그때 그 엉뚱한 감각을 전하는 것, 그것이 현대미술이 가지는 기능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게뭐야 싶은 것, 제 작품이 묻고 있습니다. 이게 훌륭한 작품입니까?” 전시는 6월 24일까지.(02)541-5701

3m가 넘는 신작 데오드란트 타입 작품은 에너지가 충만해 전시장이 좁아보일 정도다.

박현주 기자 – hyun@ajnews.co.kr

http://www.ajnews.co.kr/kor/view.jsp?newsId=2012050800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