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March, 2009
ARTVAS
Essays
레디메이드 자동차가 작품의 자격으로 갤러리에 반입되는 시대에, 청동으로 슈퍼카를 만들었다. 조각의 무거움을 조소하듯, 가볍고 간단한 작업을 지속해온 작가 권오상이 조각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과, 그것을 연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보수적인 재료를 선택한 것이다.
2008
Gwon Osang
January, 2008
예술보다 흥미로운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권오상의 작업실에서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서 든 생각.
April, 2007
Criticisms
2004년 2월 17일,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리얼 리얼리티》전의 오프닝에서 권오상은 모든 ‘90년대적인 것’들을 뒤로한 채 작지만 의미심장한 승리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는, 국제갤러리의 《리얼 리얼리티》전을 통해, 1990년대가 만들어 놓은 당대미술의 지형 위에서 진행되어온 2차 베이비부머 세대 작가들의 모호한 경쟁체재에서 처음으로 상업적 성공의 문을 두드린 작가가 됐기 때문이었다. (2차 베이비부머는 1970년대 초․중반 태생들을 말한다. 한국의 전후 출산통계의 그래프는 쌍봉낙타의 등처럼 두 개의 나란한 봉우리를 그린다. 1차 베이비부머들은 196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이들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386 세대의 주축이 바로 그들이다. 1971년 즈음에는 인구 증가가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1970년대 중반에 이르면 인구가 폭증한다. 그때 태어난 이들이 2차 베이비부머들로, 바로 대중소비문화를 이끈 서태지 세대가 그들이다.) 《리얼 리얼리티》전은 국내의 상업화랑 시스템이 30대 초반의 젊은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을 내세운 첫 사례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리얼 리얼리티》전은 형식적으로는 배병우(1950년생), 권오상(1974년생), 이윤진(1972년생), 이중근(1972년생)의 4인전이었으나, 실제로는 권오상, 이윤진, 이중근의 3인전이었다.) 게다가 전시오픈 이후 바로 준비한 에디션의 다수가 판매됨으로써 “한국에도 젊은 내국인 작가들의 작업을 소화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그렇다면 새로운 틈새시장이 개척된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인 2005년 2월, 권오상은 씨 킴(김창일) 회장이 이끄는 아라리오 갤러리의 전속 작가로 발탁되어 세간의 이목을 한데 모았고, 곧 1년간의 휴지기에 돌입했다. (2006년 현재 아라리오 갤러리의 한국인 전속작가는 권오상, 구동희, 이형구, 정수진, 백현진, 박세진, 이동욱, 전준호의 총 8명이고, 중국인 전속작가는 보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왕광이, 위에 민준, 장 샤오강, 류 지엔화, 수 지엔 구어, 팡리준, 쩡하오의 총 7명이다.)
2006.12.20
Interview
이주현: 권오상 하면 떠오르는 것이 사진과 관련된 조각 작업이었다. '데오도란트 타입(Deodorant Type)' 연작에서 사진으로 조각작품을 만들어 왔고, '더 플랫(The Flat)' 연작에서는 잡지의 사진을 오려 조각을 만들어서는 그것을 사진으로 찍었다.
2006
최근 한국미술계 최대의 화제는 '젊음'이다. 원로와 중진들의 그늘에 가려져 기껏 전시회의 말석에나 끼어 황송해 하던 젊은 작가들이 돌연 한국미술계의 주역으로 대접받고 있다. 실험적인 비엔날레에서나 힘을 쓰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최근에는 상업화랑과 경매시장에까지 온통 젊은 작가들이 휩쓸고 있다.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온 세계화의 거센 파도 탓인가?
2006.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