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2026.06.19
박정원 | 페이지룸8 디렉터
조각이란 경우의 수
《더블스프레드 Double Spread》는 권오상 작가(1974~)와 함성주 작가(1990~)가 전개하고 있는 작가 특유의 입체적 감각이 평면에 펼쳐지는 지점을 조명하는 전시이다. 두 작가의 첫 번째 공통점은 조각을 전공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평면 매체를 택하여 작업한다는 점이다. 권오상 작가는 사진을, 함성주 작가는 회화로 지속해온 일련의 작업들은 사진을 말하거나 회화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각이란 무엇인가’, ‘입체감에 대하여’와 같은 질문을 필터 삼아 작가별 페이지를 쌓고 있다. 그래서 제목은 “더블스프레드”. 얇고 납작한 낱장이 수많은 개념을 품고 있는 상태인 책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두 작가의 독특한 감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두 작가는 물리적 재료와 개념을 덧붙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덜어내고 비워내는 소조적 방식과 조각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평면과 입체를 자율적으로 넘나든다.

뉴 타입 조각 New Type Sculpture
권오상 작가가 말하는 ‘사진’은 ‘이미지’로 치환해서 말할 수 있겠다. 그가 이미지/사진으로 만든 ‘물질’들은 과거 조각가들의 명작들과 “권오상 조각가”가 사는 동시대에 묘하게 걸쳐 있다. 1998년 ‘사진조각’을 발표한 시점부터 현재까지, 개인의 사유에 따라 발전시킨 작업들은 작가가 명명한 시리즈로 분류되어 있다.

이번 전시 출품작 12점에서 그의 다양한 작업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 데오도란트타입 사진조각에서 발전한 흉상 형식의 추상 두상, 이것을 받치고 있는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Young Bird〉와 〈Socle Composé de Trois Éléments〉를 모티프로 한 받침대 그리고 대형 뉴스트럭쳐 시리즈를 벽에 걸 수 있게 제작한 릴리프 시리즈 소품, 릴리프 작품을 만들고 남은 폐기물로 만든 김민기 작가와 협업한 가구, 월페이퍼 디자인 잡지의 월별 이미지를 철사에 기대 세운 채 촬영함으로써 시대적 감각을 연출한 더 플랫 시리즈, 과거 대형 인체 대리석 조각의 다리를 받치기 위한 장치로 덧붙인 작은 조각에 영감을 받아 인물, 동물, 사물 등을 조합한 매스패턴스 그리고 근작인 PRS(Paul Reed Smith) 더블 넥 모델과 로큰롤의 아이콘 깁슨 레스폴 기타를 추상적으로 제작한 작업 등이다.

시리즈 간의 과도기에는 앞서 했던 작업이 새 작업의 레퍼런스가 되며 시리즈들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권오상 작가는 미술사에 존재감을 남긴 기념비적이고 고전적인 형상과 나무, 브론즈와 같은 전통 조각 재료를 동경하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애호의 조각으로서 제작할 수 있는 사적인 방법론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 무게와 속이 비어있는 형태 즉 ‘사진조각’이라는 현대 조각의 형식이자 이제는 장르로 자리 잡은 작업들을 이어가고 있다. 시리즈들을 관통하는 개념은 ‘조각’에 대한 물음이다.

그에 반해 그의 방법론은 덩어리 자체보다는 형상의 실루엣이 역전된 채 비어있는 부분의 공간감과 공백에서 찾았다. 특히 ‘더 플랫’, ‘뉴스트럭쳐’ 그리고 ‘릴리프’에서 볼 수 있는 X, Y축의 2차원 이미지들에서는 볼 수 없는 Z축에 해당하는 장치와 연출을 작가가 직접 찾아나서는 과정을 목도할 수 있다. 잡지 이미지를 세우고 중첩하는 형식의 반복된 구조는 원근감을 자아내고 촬영한 연출 사진 ‘더 플랫’은 알렉산더 칼더의 스테빌 조각의 형식을 빌어 다시 대형 알루미늄 입체 작업 ‘뉴스트럭쳐’로 구현된다. 이것이 다시 ‘릴리프’로 평면화되는데, 특히 이 세 단계의 시리즈에서 압축된 이미지, 펼쳐진 입체 등의 접힌 조각 구조는 2차원이 실제 그림자와 공간감을 획득하는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 조각하기 Ways of Sculpting
이번 전시에서 함성주 작가의 무채색 인물 연작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8호 캔버스 18점을 1열로 설치했고, 20호 캔버스 36점은 12열 3행으로 배치했다. 책을 보는 시선이 대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듯이 작품을 완성한 시간 순서대로 의도적으로 설치했다. 소재를 인물로 통일함으로써 목도할 수 있는 작가 특유의 감각은 회화적 기법을 사용하는 조각적 태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목구비의 형태와 간격 그리고 위치는 인물을 구분하는 지표로 작용하는 만큼 인체에서 가장 섬세하고 입체적인 부위이기도 하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2019년 개인전 이전부터 레퍼런스로 수집한 이미지들인데, 현실과 가상에 존재하고 특정 인물을 가리키기도 하고 패션 브랜드나 판타지 게임의 무드를 가늠할 수 있는 표상이 된다. 전시장의 물리적인 조건상 20여 점은 미처 걸지 못했지만 시간순으로 변해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좀 더 매끈해지고 또렷해짐을 알 수 있다.
작가는 30점 정도 작품을 그리고 난 다음 단계에서 조금씩 변화되는 지점을 발견한다고 했는데, 그건 화면에 그려지는 형상의 변화가 아니라 태도의 변화였다. 재현이 앞서거나 심상적 표현에 파고드는 등 각각의 그림은 작가에게 동일하지 않은 자각의 기회를 부여하였다. 같은 소재를 다른 크기로 그리거나 같은 도상이 변주되는 과정을 노출하는 것은 작가의 태도와 역량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방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함성주 작가의 그림은 무채색으로 일관한다. 모니터를 카메라로 촬영할 때 생기는 모아레 현상이 전체적인 화면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유년 시절 오락실을 운영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브라운관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에 익숙했던 점을 들 수 있다. 실존하는 풍경보다 수용하기 용이한 상태로 다가오는 가상의 이미지들은 그가 입체감을 감각하는 데 있어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그래서 조각을 전공한 작가는 평면에 입체적인 감각을 실현할 수 있는 소재를 찾음으로써 회화를 시작할 수 있었고 현재까지 지속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인물 외에 새롭게 시도되는 소재는 ‘조각’이다. 이를테면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 Dionysus의 상상의 토르소와 그리스 신화의 미궁에서 미노타우르스를 처치하는 Slaying the Minotaur 게임 속 장면을 번안한 현대 조각이다.

다수의 무채색 캔버스는 삭제된 시간성, 과거의 전유물 등의 관념을 넘어서는 하나의 명징한 시선을 향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딘가 신비로운 기시감을 유발하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있는 시스템을 인식하게 된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인물 아카이브는 보는 방식에 대한 설계이고 시선의 흐름은 시간의 층위를 형식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독특한 시공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스프레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을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권오상 조각가는 조각의 개념에 새로운 구조를 더하면서 조각을 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론을 지금도 여전히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조각과 조각사에 대한 경외감을 잃지 않으면서 구상하는 개인의 조각 방법론은 조각 자체에 대한 개념이 관념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함성주 작가가 그리는 무채색 그림에 적합한 소재의 선택과 은연중에 나오는 눅진한 소조적 브러시 스트로크와 디테일한 조각적 터치로 완성된 화면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추정할 뿐이다. 모아레 패턴이 드러나기도 하고 포착되지 않는 캔버스 단면들은 각각의 세계가 송출하는 표피일 수 있다고 말이다.
이제 더블스프레드를 잠시 덮는다.
※ 참고 자료
1) 권오상 작가 인터뷰, 2026년 5월 7일, 작가 작업실
2) 함성주 작가 인터뷰, 2026년 5월 1일, 작가 작업실
3) 인터뷰 참조: MMCA 작가와의 대화: 권오상 작가, 2021 https://www.youtube.com/watch?v=St6X6-RdtIc
4) 권오상 작가 홈페이지 https://osang.net